평일 점심, 출근하기 전에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홍상수 감동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봤다.


영화관 로비에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

​전광판을 분할해서 위쪽에서는 예고편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아래쪽에서는 포스터를 보여준다.

​예고편에서도 그렇고, 제목에서도 그렇고,

'지금'과 '그때', '맞다'와 '틀리다'가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짝을 이뤄 머리를 헤집어놓는다.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었던 이 단어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

말의 의미가 무색하다는듯 더더욱 마구잡이로 섞여버린다.


그 일례로 이 영화는 제목을 뒤집어버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끝을 맺으면,

이 영화는 처음과는 달라진,

즉, 이번에는 반대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대한 시각으로,

끝을 맺었던 이야기를 다시금 시작한다.


이 영화는 거의 동일한 스토리에 작은 변주를 가해 확연히 달라지는 두 개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의 시공간도 동일하고, 사람도 동일한데, 

두번째로 이야기를 진행할 때는

대화를 조금 달리 하거나 혹은 들려주지 않았던 대화를 들려준다거나,

처음과 달리 춘수의 독백을 없애고 희정을 위주로 화면을 연출한다거나,

사뭇 달라진 자세나 표정, 말투나 태도를 보여줘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전개를 이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묘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것들로 인해 둘 사이의 교감이 달라지고, 감정이 달라져,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엔딩, 전혀 다른 온도의 관계를 맞게 만든다.

마치 동일한 멜로디에 조금의 변주를 가해 전혀 다른 두 곡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처럼.



또 원테이크샷 혹은 롱테이크샷을 통해 둘의 긴 대화로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채운다는 점도 묘미다.

그래서 영화를 위해 준비되고 정돈된 대사를 듣는 느낌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아 정돈될 수가 없는 실제 대화를 듣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둘의 대화는 생생했고, 어수룩한 데가 있었으며, 실감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영화의 외적요소인 연출이 아닌 내적요소,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영화가 흘러가는 느낌이 꽤나 좋았다.



전반부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와 후반부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많은 부분이 동일하다.

 영화감독인 함춘수(정재영)가 자신의 영화상영과 GV일정을 위해 수원에 가게 되고, 일정이 하루 늦춰지는 바람에 하루의 시간을 수원에서 보내게 되면서 우연히 만난 윤희정(김민희)에게 설렘과 사랑을 느끼게 되다는 거나, 그런 희정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원행궁, 찻집, 희정의 작업실, 초밥집, 희정 지인의 가게(시인과농부), 희정의 집 근처 골목이 똑같이 영화 속 장소가 된다거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어느 정도 같은 대화가 반복된다는 점 등이 같다. 

그러나 결말은 크게 달라진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결말이 좋지 않다. 춘수가 사실은 23살에 결혼해서 애가 2명이나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희정의 친한 언니에 의해 밝혀지면서 둘의 관계가 안 좋게 끝나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건 뭘 의미하는걸까? 안 좋게 끝난게 지금은 틀리다는 뜻이라면 그때가 맞은 이윤는 대체 뭘까?

반면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말을 보여준다. 춘수가 자신의 결혼사실을 희정에게 털어놓고, 술 먹고 추태를 부린 것을 들켰는데도 오히려 둘의 관계는 좋은 끝을 맞는다. 이 결말 역시 제목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좋게 끝났으니까 지금은 맞다는걸까?

 아니 애초에 관계에 있어서 맞고 틀린 게 있는 것인가?


여기에는 


나처럼 영화를 본 후 자신만의 퍼즐을 어떻게든 완성해보려는 관객들에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애초에 없어서든, 아니면 맞추다가 잃어버려서든,

이유가 어찌 됐건 이 영화의 의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의 퍼즐을 완성하지 못한 관객들에게,

홍상수 감독은 능청스레 이미 관객들이 여러번 보았던 '예고편'이라는 마지막 퍼즐조각을 건넨다.


그리고 그 예고편에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한 장면을 되감은 영상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그때가 맞고 지금이 틀린건지 아니면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린건지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대답하고, 그러다 되묻는 춘수와 희정이 담겨있다.


예고편에 담긴 둘의 대화는 이렇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0199&mid=28137

정재영: 그때가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김민희: 그때가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그때가 맞는거죠?

정재영: 그때가 맞지 않나요?

(둘 다 웃음)

정재영: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죠?

김민희: 지금은 틀리고 그때가 맞는건가요? 지금이 맞는것 같은데.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려요.

정재영: 지금이 맞다고요?

김민희: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려요.

정재영: 그때가 틀리고 지금이 맞는건가요? 정말요?

김민희: 그럼요! 

정재영: 정말 지금이 맞는거죠?

김민희: 네.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려요.


결국 둘의 대화의 끝은 영화의 제목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된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는 건지...

사실 감독은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은 틀릴 수 있고,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렸을 수도 있다고 함으로써, 

즉, 완전히 맞는 쪽에도, 완전히 틀린 쪽에도 서지 않음으로써,

또 맞고 틀림이라는 기준으로 설명될 수 없는 두 개의 엔딩을 보여줌으로써,

애초에 옳고 그름이라는 단어는 사랑과는 연관지을 수 없는 것임을 얘기해려고 했던게 아닐까?


그리고 또 

춘수가 자신의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했던 말처럼, 

그리고 좋은 끝을 가져왔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의 춘수의 솔직하고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모습처럼,

사랑은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는 '말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들'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그렇게 용감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건 아닐까?


해석은 각자의 몫이니까 나름대로 해석을 내려봤지만,

이 분의 해석도 좋아서 링크를 가져와봤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21&aid=0001733704&sid1=001













 


'영화쟁이의 스크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닷마을 다이어리  (0) 2015.12.26
건축학개론  (0) 2015.04.08
영화관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마미>  (0) 2015.04.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