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후 어느 날 -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고가는 것이 직선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맞닥뜨리는 것 같은 속에서
나의 설움은 유유히 자기의 시간을 찾아갔다
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
우둔한 일인 줄 알면서
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
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느냐
흐르는 시간 속에 이를테면 푸른 옷이 걸리고 그 위에
반짝이는 별같이 흰 단추가 달려있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꾸 뻐근하여만 가는 목을 돌려
시간과 함께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것
그것은 혹시 한자루의 부채
- 그러나 그것은 보일락 말락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것 -
하나의 가냘픈 물체에 도저히 고정될 수 없는
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이며
이 밤이 기다리는 고요한 사상마저
나는 초연히 이것을 시간 위에 얹고
어려운 몇고비를 넘어가는 기술을 알고 있나니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
빈 방안에 나는 홀로이 머물러 앉아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
- 김수영, 『방안에 익어가는 설움』, 1954.
설움이 가득한 생활이어도 이건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설움이 방 안에 충만할 때도, 우둔한 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설움을 역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맬 때도, 고요한 사상을 시간 위에 얹고 어려운 몇고비를 넘어가는 것
그렇고 설움을 보낸 뒤 빈 방에 홀로이 머물러앉아 책을 열어보는 것
글쟁이의 서재
- 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2016.01.28
- 달나라의 장난 2016.01.27
- 임솔아, 최선의 삶 2015.12.24
- 심보선 청춘 2015.12.03
- 황인찬 종로사가 2015.12.02
- 복효근 순간의 꽃 2015.12.02
- 사람냄새 나는 만화가들-최규석,김수박 2015.11.26
- 삼성과 백혈병 그리고 노동자의 인권 2015.11.25
- 너라는 악보 2015.10.10
- 충분히 다정해 2015.10.10
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달나라의 장난
막내 동생의 결혼식(앞줄은 어머니, 뒷줄은 김수영, 김현경 부부)
1968년 '시여 침을 뱉어라' 부산에서의 문학세미나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3>
1950년 8월 의용군으로 끌려간 지 2년 만에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김수영 시인은 얼마 되지 않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런 그에게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씨는 어느날 편지를 쓰면서 한 장의 만화를 그려넣었다. 그 그림은 접시 위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앙꼬빵 세 개였다. 포로수용소에서 갓 나오자마자 부산에서 직장을 얻기 위해 거리에서 거리로 굶주리며 떨고 있을 수영에게 따스한 유머로 위로하기 위해서 그려넣은 것이었는데 수영은 그림을 보고 웃다가 울었다는 글과 함께 이 시 <달나라의 장난>을 보내왔다고 한다.
산다는 것이 새삼스레 위대하고 신기로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라는 구절처럼 우리는 무엇을 위해 멈추지 않고 돌고 또 도는걸까?하는 의문이 든다.
생존을 위한 모든 행위의 귀찮음, 고통과 번뇌를 참아내면서까지 왜 우린 매일 살아가고 있는걸까? 밥을 먹고 싶지 않아도 죽으면 안되니까 먹어줘야 하고, 잠만 자고 싶어도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잠을 참아가며 일을 해야 하고, 즐겁기 위해 즐겁지 않은 일을 배로 참아내야 하는 고통 넘어 고통인 삶을 대체 왜..? 죽음이 평화 속에 영원히 잠드는 거라면 우리는 왜 평화 대신 전쟁같은 삶을 택하는걸까? 죽으면 귀찮은 밥먹기도 안해도 되고 실컷 잠만 잘 수 있을텐데.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게 두려워 내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걸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지 않으려고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내며 꿋꿋이 살아가는걸까?
달나라의 장난도, 달도 없는 그 세계가 무서워서? 사는 동안은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나가야하며 끊임없이 돌아야만 하는 팽이같은 삶이 너무나 무겁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날 보면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계속 살아가도록 애초부터 설계되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임솔아, 최선의 삶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책을 읽을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책이 그 첫번째 기록이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트위터 때문. 인터넷보단 트위터리안들의 입소문을 더 믿는지라 트위터에서 떠들썩하게 추천을 받고 있는 이 책을 선뜻 골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혹은 다 읽고 나서 제목에 맞춰 책의 주제를 생각해보는건 대중들이 읽기 바라는 의도를 따라가는것 같아서 일부러 하지 않는 방법이긴 하지만 '최선의 삶'으로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각기 다른 최선의 삶이 가져오는 그들의 비극적인 일에 대해서도.
이 책의 주인공은 여중생인 나(강이), 아람, 소영. 셋은 주민들 간의 격차가 큰 새롭게 만들어진 읍내 전민동에서 같이 중학교를 다닌다. 이 셋도 그 격차로부터 예외일 수 없어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성장하지만 아이들의 우정답게 서로를 구분지으려 하지 않는다. '서로를 구분할 줄은 알았지만 구분짓지는 않았'던 아이들은 오히려 기성세대의 그러한 구분, 자신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씌워진 학교라는 제도적 구속 등에 반발하여 함께 가출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의 심사평을 맡은 소설가 정한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그와 같은 구분에 반발하며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무인 모텔에 몰려가 알몸으로 포르노를 보고, 모두 같이 소주를 마시고 뒹굴거리며 하나의 몸, 하나의 냄새가 된다. 이들은 '다행히'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고, 무성적 존재로서의 희락을 함께 나눈다.'
하지만 애초에 집이 싫어서, 집이 '병신'이라 길을 선택한 강이와 아람과 달리 소영은 유복한 아이라 집을 나가면 '병신'같이 살아야 하는 아이. 가출의 원인과 목적이 달랐으니, 각자가 좇는 최선의 삶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설은 아래에서 정한아가 말하는 대로 흘러간다.
'강이와 아람에게 그 기행이 자신을 잊어버리기 위한 것이라면, 소영에게는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 격차는 생활의 격차보다 더 크게 그들의 사이를 벌려놓기 시작한다. (...)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서로를 맹렬하게 증오한다. 알몸으로 하나되어 낄낄대던 아이들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하고, 옷을 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면은 마침내 세계의 본모습을 보고 몸을 가린 태초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불합리와 모순, 그리고 분노를 느끼며 경험하는 잔인한 성장의 일면이다. 강이는 소영과의 사건을 겪으며 아이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벗어난다'
뭐 이런 얘기쯤 된다. 한몸처럼 지냈던 소영과 내가 병신 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비극적인 이야기.
임솔아 씨의 문장도 좋았다. 소설가 박성원 씨는 심사평에서 응모작 중에 기발한 소재에 기대는 소설이 많았는데 그 기발함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유는, 아무리 기발한 이야기라고 해도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문장 뿐이기 때문에 기발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이 소설은 소재의 기발함은 없다. 하지만 문장이 좋은 소설이다.
읽으며 좋았던 문장들을 소개하고 포스팅을 마치겠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
아무나 쓸 수 있는 샴푸 냄새와 로션 냄새를 똑같이 풍기며 같은 냄새가 되었다. 나는 친구들이었다. 전날에 묵었던 손님이었다. 옆방, 윗방, 아랫방 손님이었다. 내일 묵을 손님이었다. 아무나였다. 그날은 세상 누구나의 생일이었다.
검은 줄무늬가 있는 아기 고양이
이제는 자기가 죽을 것 같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되었다. 죽음에 내몰린 약자가 된 채로 엄마는 나를 엄마의 액자 속으로 밀어넣고 싶어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약자였다. 샤프심보다 더 강한 약자였다. 엄마의 액자는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흉기였다. 주먹보다 더 무자비한 흉기였다.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어야만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고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세 아이
아람은 보조치아를 혀끝으로 쓸어내리며, 언젠가 보조아빠를 만들 거라고 했다.
GPS
우리는 저마다의 불행을 한자리에 모아놓고서는 어이없는 교집합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다시 무인 모텔에 온 것처럼 행복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질수록 서로에게 진절머리를 쳤다. 소영의 연기는 점점 더해갔지만,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좆밥
무릎은 꿇지 말았어야 했다. 무릎을 꿇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태도,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였다.
'아람아, 너는 더러운 함정이야'
여전한 모든 것을 함정이라고 불렀다. 더럽고 교활한 함정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소영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날보다 더 굴욕적인 함정들이 일상처럼 되어갔다. 익숙해지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나를 내버려두기로 작정했다면, 내가 내버려둘 수 없게 해야겠다고 작정하기 시작했다.
병신이 된 후에도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진짜 병신이었다.
칼을 꺼낼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다시 집을 나갈 용기도 사라졌다. 학교를 박차고 떠날 용기도, 먼 밖까지 가보고 싶다는 꿈도 사라졌다. 나에게조차 나는 투명해져갔다. 그런 나를 편안해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
투어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다른 물고기와 함께 있게 된다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온전치 못할 것이다. 상대방이 사라지거나, 자신이 사라지거나, 그것이 투어의 운명이었다. 살기 위해서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어항 속에서 혼자 살도록, 평생 거울과 함께 살도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투어로 태어난 강이는 원래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스노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더는 세상은 아름답고 즐겁지만은 않고,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흉기를 휘두르는 존재였으며, 한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철저히 타인임을 깨달아 갈 때,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마음을 처음으로 겪을 때, 우리는 강이처럼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 강이만큼 저항할 수 있을까?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최선을 위해 나를 조금씩 포기하고 투명해져버린 과거의 내가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이 되어있었다.
한 방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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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청춘
황인찬 종로사가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겠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 그것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놀라워서, 위대하고 장엄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이걸 정말 원했다고 믿겠지 그리고는 신적인 예감과 황홀함을 느끼며 그것을 견디며 끝없이 끝도 없이 이 거리를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그러다 우리가 잠시 지쳐 주저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거기에 담긴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 버리겠지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황인찬 , 종로사가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라는 이 말이 어찌나 좋던지 이 구절 하나에 폭 빠져버린 시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종로라는 오래된, 소설같고, 영화같은, 그런 오래된 거리를 걷는 모습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지쳐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
서로의 눈을 '아 이정도면 되었다.'하는 마음이 될때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지길래 그 그림을 재빨리 마음에 그려 넣었더니 어서 너를 만나 "우리 자주 걸을까요"라고 말하고 싶어 입과 마음이 근질근질
복효근 순간의 꽃
그저 무심히
내가 너를 스쳐갔을 뿐인데
너도 나를 무심히
스쳐갔을텐데
그 순간 이후는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스쳐가기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간밤의 불면과
가을 들어서의 치통이
누군가가 스쳐간
상처 혹은 흔적이라면
무심하지 않았던게 아니라
너와 나와는
그 무심한 스침이 빚어놓은
순간의 꽃이기 때문인 것이다
복효근 , 순간의 꽃
무심하여 꽃 한 번 피워본 적이 없는 내가
너를 만나 꽃이라는 것도 되어 본다. 고맙다.
사람냄새 나는 만화가들-최규석,김수박
라디오책다방
황정은 작가를 좋아해서 알게된 창비 라디오 책다방이라는 팟캐스트. 2013.01.31.- 2015.05.18일까지 시즌 1이 진행되었고, 현재 시즌2가 진행되고 있다.
난 황정은 작가를 무지 사랑하므로 진행을 맡았던 시즌 1 1회부터 정주행중인데 책을 정말 사랑하고 또 그만큼이나 많이 읽는 분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방송이라서 다루는 주제에서뿐만 아니라 대화 하나하나에도 파생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들이 거미줄만큼이나 넓게 퍼져있다.
평소 일할때 출퇴근할때 라디오를 들었었는데, 라디오 같은 경우는 들을땐 편안하고 재밌지만 너무 일상적이고 가벼운 얘기들만 다뤄서 그런지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최근에 자주 들었다. 듣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일종의 허탈감도 찾아 왔고..그래서 듣기 시작했는데 정말 좋다..
이번 포스팅은 3회 중 맘에 들었던 대화의 일부를 글로 옮겨 써 봤다. 이 날 게스트는 최근 송곳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만화가 최규석 씨와 예리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만화가 김수박 씨. 이 날은 질문도 좋았고 이 두 분의 대답 역시 너무나 좋았다.
제3회 사람냄새 나는 만화가들
진행자: 김두식(교수), 황정은(작가)
게스트: 만화가 최규석&김수박
1. 만화가가 생각하는 만화라는 매체의 매력
황정은: 제가 이런 질문을 좀 드려볼게요. 만화가가 생각하는 만화라는 매체의 매력에 관해서 여쭙고 싶어요. 만화의 어떤 점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끼시는지? 아까 발언수단으로써의 만화를 생각하셨다고 했는데..
김수박:최근 현상으로 저는 생각이 많이 드는게, 내가 살던 용산이나 사람냄새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게 되게 많아요. 그 사건들이나 희생자들의 얘기가 사실은 언론매체에 많이 나왔었거든요? 그게 좀 시간이 지나면 자꾸 잊혀진다는 생각도 들고, 지나가버린다는 생각도 들고..그것을 붙잡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이런 시도를 하는거거든요.
김두식: 잊혀지는 것을 붙잡고 계속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김수박: 네. 역사에 기록을 하려고 영화도 그렇고 그렇게 하는거잖아요? 그 시도를 하게 되는데 거기서 만화라는 매체가 한 중간정도의 지점으로서의 효과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여기서 했던 얘기가 그닥 새로운 얘기는 없거든요? 물론 직접 만나서 듣게 되는 얘기는 있지만, 언론을 통해서 어느정도 얘기가 나왔던 것들인데 이걸 재연을 하게 되는 경우에..뭐 재연드라마 같은거 많잖아요? 그런 형식으로 하게 될 때는 재연이라는걸 알잖아요 사람들이? 만화로 표현을 하게 되니까 보는 사람들한테 이 사람이 그 사람(실제인물)이라고 느끼는 현상이 벌어져요. 저널리즘에서 보던거하고 다른 밀착감을 느끼게 되는거죠. 그게 또 영화라는 매체로 옮겨가게 될 때는 더 정보가 한정지어질 수가 있고, 또 갈 길이 좀 멀잖아요?
김두식: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음대로 그려낼 수가 없는 문제가 있죠. 영화 매체 같은거는...
김수박: 네, 그 사이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만화가.
황정은: 그것도 그렇고..어..글로 접하는 것보다도 만화로 접할 경우에는 그 수월성이라고 해야하나요? 만화가 쉽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일반 대중이 보기에 더 그 사건에 대해서 더 이미지적으로 확 와닿으면서..
김수박: 이해가 잘되게? 그 또 쉽다는 얘긴 좋은거예요. 쉬워야죠! 그래서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게 하나의 묘한 가능성을 언뜻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세상을 더 연구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황정은: 최규석 작가님은 어떠세요?
최규석: 만화라는 형식 자체가 현대에 와서 새로이 발견된 형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볼때는 인간이 가진 표현수단 중에 가장 원초적인 표현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은 굉장히 오래 전부터 그렸고 동굴벽화라든지 그런 그림들이 동굴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린건 아닐거라는 말이죠.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렸을거란 말이죠. 그니까 애초에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라고 하는 것 속에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욕망이 들어있는거죠. 그거에(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 만화가 아닌가..그래서..왜 만화가 더 쉽게 읽히는지는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건 사람들이 그냥 타고나는 것 같아요. 만화형식이라고 하는게..그리고 또 하나는 완성되기가 굉장히 힘든 매체인것같아요. 현대의 만화라는 형식이 생긴지 아직 많이 안 됐고 그러다보니까 거인이 몇 명 없죠. 그러다보니까 어떤 정점까지 가 있는 구체적인 형태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도전할 수 있는 방향들이 엄청나게 많이 열려있는거죠. 그런 데서 오는 자유로운 느낌? 그런게 일단 좋구요.
김수박: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게 많이 열려있어요. 그게 굉장히 재밌어요.
황정은: 그러게요. 제가 그게 제일 많이 부러운 점이에요. 저는 문장을 써서 글을 쓰는 사람인데, 어휘를 써서 표현할 수 있는게 굉장히 한계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정말 이거를 말도 안되게 상식적으로는 약간 좀 틀어진 듯한 공간인데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그냥 이런 세계가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납득이 확 되거든요. 그게 참 부러운 점이기도 하고..그렇습니다.
최규석: 이번에 김수박 작가님(사람 냄새)이랑 김성희 작가님(먼지없는 방)이 하신 작업을 보면은 확실히 느낄 수 있죠. 사실 영상매체로 담기 힘든 그런 제작공정이라고 하는 거? 이런 것들은 그림이 아니면 사실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김두식: 그런데 그 전에 사실 글로 돼 있는 거 보면서 대충 덮어버리고 갔던 거에 대해서 '아 이런 공정이 있구나.', 그리고 이런 공정 중간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거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월하게 읽히는 가독성과 큰 감화력이 만화가 갖는 큰 장점인 것 같다. 황정은 작가가 말한 어휘의 한계를 극복하는 점도 그렇고..
2. 만화가의 수입
김두식: 돈 버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사실 여쭙기 쉽지 않지만 굉장히 중요한 문젠데 그래도 두 분은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제일 잘 알려진 작가 20명 정도를 뽑을때 그 안에 들어가는 분들이신데 그래도 아까 보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 갈등 이런게 작품에도 늘 묻어 나오고 오늘도 그런 말씀을 좀 하시잖아요. 어떻습니까?
김수박: 저부터 말씀을 드리자면은 만화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한 3년 동안은 번 적이 없어요. 근데 그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새로운 분야의 길을 들어가면 앞구르기를 3년 정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브잡으로 돈을 벌죠. 막일하러 3년 정도를 다녔었어요. 3년 후부터 이 서브잡을 본업으로 하나씩 하나씩 옮겨가는 과정을 거쳤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남들 버는 정도만큼에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황정음: 최규석 작가님은 어떠세요?
최규석: 저는 뭐 초반에 계속 힘들었죠. 저는 일단 먼저 유명해졌어요. 이름은 엄청 유명해졌는데 그 이후로 연재하자고 하는 데가 없었죠. 이름만 유명해지고 돈은 하나도 없고 이런 상황에 처했었죠. 창작분야는 어디나 마찬가지인것같아요. 제가 외국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랑 얘기를 해도 뭐 다들 힘들게 살아요. 근데 문제는 그거인것 같아요. 아르바이트 시급..아르바이트 시급이 얼마나 되느냐. 하루에 6시간 정도만 일을 했는데 방세내고 밥값이 된다 이러면은 4년 정도는 버텨요 젊은이들은. 한 3-4년 버티는데 한국에서는 그걸 하려면 8시간 이상 일을 해야되거든요 그러면 집에 가서 작업할 시간이 없어지는거죠. 그러니까 방세 내다가 볼일 다 보는거죠. 뭐 그러다가 또 몇년을 또 어떻게든 버텼어, 버텼는데 엄마가 아프면 딴 일을 해야되거든요. 그러니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 데뷔할 무렵부터 정부에서 지원금을 대고 보조를 해야된다까지는 아닌데 최저생활을 할 수 있는 어떤 외부적인 요건들..
김두식: 그런게 최규석 작가가 비정규직 문제나 최저임금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되겠군요? 남의 일이 아닌?
최규석: 저는 다행히 운이 좋아서 몇 년을 버텼고 그리고 일찍 이름이 알려져서 먹고 살 수 있게 됐는데 그 외에 후배들 보면은 몇 년 버티다가 떨어져 나가거든요. 그러니까 데뷔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작가가 아닌 이상은 데뷔작으로 다음 작품을 할 돈을 못 모으거든요. 그러면은 조금 더 고생하다가 엄마가 아프면 그만두는거고 엄마가 안 아프면은 한번 더 하는거예요. 이런 방식이 되는거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데뷔작부터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건 아니고 그리고 오래해야만 완성이 되는 스타일의 작업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근데 지금은 굉장히 자극적이라거나 아니면 반짝반짝하는 재기들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들만 살아남고 이제 좀 오래 끌어야 나오는 작품들이 죽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거죠.
*2016년 우리나라의 최저시급은 6030원이 된다. 전년도의 5580원에서 8.1%가 인상된 액수이지만 물가 대비 임금으로 보면 여전히 낮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받는 대부분은 미래를 위해 준비해나가는 이십대 초중반 청년들이다. 부모님의 경제적 조력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자립해서 생활하고 취업을 하기엔 너무 힘든 현실 같다....창작이든 여타 다른 분야든 자신의 꿈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이 꿈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그게 아니어도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데..
3. 사회성 짙은 만화들, 고발적인 만화들을 그리게 된 계기?
김두식: 사회성 짙은 만화들, 고발적인 만화들을 그리게 된 계기는 뭐가 있을까요?
김수박: 시대의 변화가 그걸 만들었죠. 원래 관심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저는 뭐 개인적 사고나 상념, 머릿속 상상을 만드는걸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가 살던 용산을 만들었던 계기를 보면 워낙에 사회적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왔고 약간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최규석: 변화가 다가온게 아니라 변화를 그때서야 안거지.
황정은: 공감합니다.
김수박: 명량만화를 좋아하거든요? 명량만화를 하고 싶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그걸 하죠. 내가 명량만화를 하고 싶기 때문에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데 일조를 해야죠.
김두식: 최규석 작가님은 약간 기득권층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의지같은 것도 약간 보이는데...
최규석: 전혀 없습니다. 저는 굉장히 기득권 좋아합니닼ㅋㅋㅋ
김두식: 네ㅋㅋ어쨌든 뭐라 할까요 이런 제일 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얘기?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는 뭐가 있을까요?
최규석: 일단 바닥에 있는 사람들, 그게 바닥은 아니죠. 완전 바닥은 아닌데..일단은 제 출신성분 자체가 도시빈민 출신이다보니까 그냥 익숙한거죠. 그니까 뭐 부잣집에 한번도 안 가봤는데 거실에 소파가 있고 아빠는 의사고 삼촌은 변호사고 이런게 상상이 쉽게 안 퍼져나가잖아요? 그런데 주위에 아저씨들 다 노가다 하시는 아저씨들이니까 그 분들의 대사나 사고방식이나 굉장히 익숙하고요.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러운 상상의 씨앗이 그 단계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뭐 타고난 부분도 있을테지만 사람을 그리는 직업이잖아요.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야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아까 말했다시피 사람이라고 하는게 상황의 산물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서로 5% 정도가 다르고 95%가 비슷한데 이 95%는 그럼 뭐냐, 결국엔 사회? 역사? 유전? 뭐 그런 것들이겠죠. 그러다보니까 좀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서로서로 5%정도가 다르고 95%가 비슷하다는 말이 정말 크게 와닿았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서로를 95%만큼이나 다르다고 느끼는가..
4. 만약 내 딸이나 아들이 만화가가 된다고 하면?
김수박: 남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일단 걱정을 하기는 하는데 뭐랄까요 자기가 원하는 것. 사람이라는게 아주 사소하든 크든 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외부적 요소로 막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내버려둘 생각이에요.
김두식: 고생하더라고 그냥 원하는 길을 가라?
김수박: 아마 내버려두면은 더 빨리 깨달을 것 같아요. 이건 아니다.
김두식: 괜히 막는거보다?
김수박: 막으면은 미련이 더 남죠. 세상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김두식: 네. 최작가 어떠세요?
최규석: 어..아이 입장에서는 좀 힘든 선택이죠. 왜냐면 아빠가 유일하게 잘 아는 분야고(ㅋㅋㅋ)..막 갈구지 않겠습니까? "이래가지고는 데뷔를 못해." 이런식으로? 다른 영역으로 간다 한다면 제가 참견할 게 하나도 없죠. 제가 회사를 다녀봤나 사시를 준비해봤나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죠. (내가 딸이라면 묘...묘하게 설득돼서 만화 안할듯ㅋㅋㅋ) 그냥 놔둘텐데 만화한다고 하면 해부학부터 해서 온갖 것들을...야야 이게 뭐니 하며 갈구게 될텐데 그런 걱정은 있죠. (ㅋㅋㅋㅋ) 그리고 딱히 직업적인 부분에서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게 있다라는 거, 저는 굉장히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안정적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고 싶다는 욕구가 사실 거의 대부분이지, 난 꼭 이걸 해서 먹고 살고 싶어 라고 하는 거는 굉장히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 직업쪽으로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게 굉장히 큰 복이라고 행운이라는 말이 굉장히 공감되는 대목..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으라고 하는 말을 들을때마다 난 꿈이 행복하게 사는건데..나한텐 직업보다 상위의 개념이 꿈인데..라는 생각을 하는 나라서 더 공감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내 직업상이 뚜렷하진 않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난 내가 좋아하는 세계에서 돈을 벌고 싶다. 나와 세계가 비슷한 사람들을 직장동료로 삼고 싶고,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내가 관심있어 하는 것들을 함께 만들어내는 그런 일.
5. 인권만화 <어깨동무>(2013.02.20 창비)에서 어떤 내용을 그리셨는지?
김수박: 저는 제목이..본격호소만화 <사랑이란 이름의 추억박탈>.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제 나름대로 굉장히 세게 얘기를 했어요. 전체 주제는 (애들을) 손에서 놓자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랑한다고 얘기하거든요 부모들은. 지금 애들을 그렇게 볶아대면서 사랑해서라고 얘기하거든요. 근데 부모들한테 저는 계속 묻고 있는거예요 만화로. 당신은 놀았지 않냐? 당신 그렇게 좋은 추억 다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애들한테 그러냐?
황정은: 어른들 욕심인거죠 그게 다.
김수박: 사랑해서? 아니죠. 제발 놓자.
김두식: 최규식 작가는 어떤 그림을 그리셨어요?
최규식: 저는 제목이 <맞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정했는데 아까 얘기했다시피 한국의 노동운동, 파업노조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모른다라는 거는 아닌것같아요. 몰라서 공감을 안한다거나, 몰라서 이게 문제다라고 인식을 안한다거나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저 사람들은 맞아도 되는 사람들로 분류돼버린것같아요.
*맞아도 되는 사람들로 분류돼버린 것 같다는 말을 듣고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던...나도 어느새 그들의 아픔에 너무 무뎌진 건 아닌지..
6. 김수박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창비에서 2014.10.30일자로 출판되었다.)
김수박: 대선 때 드러난 어떤 묘한 일이 한 가지 있잖아요? 경상도. 사람 숫자도 되게 많고요. 그리고 가진 묘한 특성이 또..우리 나라 사람들이 "저쪽 사람들 대체 왜 그래?" 라고 생각하는 거를 좀 파고들어서 얘기를 하려고 해요. 제가 자랐던 배경도 있고요, 그 사람들이 가진 어떤 기득권 의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80년대 역사를 쭉 훑으면서 이야기를 가지고 그 본질을 좀 탐구해봐야되지 않을까! 이러다가는 경상도만 잡으면 대통령 되는거 아니에요 지금. 그걸 좀 파헤치고 싶어요.
*김수박과 최규석 작가의 만화들을 꼭 읽어봐야겠다. 절판된 건 구할 수 없다던데 아쉽다. 그리고 황정은 작가 너무 좋다...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도 좋지만 웃음소리도 좋고 무엇보다 대화하는 법이 좋다..ㅜㅜ근데 마지막에 발견 이 작가라는 코너를 진행하는데 낭독하는게 너무 성당 복음말씀 스타일ㅋㅋㅋㅋㅋㅋㅋㅋ아우 귀여우심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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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백혈병 그리고 노동자의 인권
노동자, 사람에 대한 예의
김낙호 만화연구가 capcold@capcold.net
『사람 냄새』 (김수박 지음, 보리출판사, 2012)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출판사, 2012)
발전의 성숙도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사회도 완벽하게 약자들에게 공정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한 쪽으로는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잘 해낼 수 있는 합리적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약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감내할 것을 강요받지 않도록 여러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 그 중 후자인,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밟히지 않을 힘이란 노조 같은 조직화를 통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보상 권리를 통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강요된 피해를 언론 등을 통해 담론화하여 대중의 연대를 얻어내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물론 험난하다. 강자들의 방해에 의해서든 사회적 편견에 의해서든, 조직화는 늘 쉽지 않다. 보상 권리를 행사해줘야 할 공공기관들은 종종 공공성보다 관료성이나 정치적 이해를 우선순위에 둔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담론화인데,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폭넓은 연대를 얻어낼 수 있을 만큼 주목받는 화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삼성 공장에서 작업환경 문제가 원인이 되어 큰 병을 얻었는데 정당한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해 싸우는 노동자들과 가족이라면, 이 구도는 더욱 절망스러워진다. 상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 강자인 대기업이며, 자사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막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여러 언론사들이 광고수익으로 삼성과 연결되어 있어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 또는 숫제 광고에도 과도하게 신중하다. 게다가 온갖 “나만이라도 성공하자”며 무한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개인들은 굳이 몇몇 노동자들의 억울함 따위에 관심을 할애할 겨를도 없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사람 냄새』『먼지 없는 방』 이 두 권의 책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뜬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사람 냄새』는 피해자 황유미 씨의 아버지의 시선으로 고인의 투병 및 사망 후 과정에서 삼성 측과 맞선 내역을 묘사한다. 지명도 있는 직장에서 일하던 딸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현실에서의 힘겨운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먼지 없는 방』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장 동료였던 황민웅 씨와 결혼한 부인 정애정 씨가, 백혈병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가족을 꾸리며 싸움을 이어가는 내용이다. 반도체 공장의 첨단관리가 결국 제품을 위한 것일 뿐이고, 사람을 위한 안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발을 빼는 어설프고 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 다른 피해자들을 다룬 작품이지만, 삼성 피해노동자들이 모여 싸우고 있는 모임인 ‘반올림’을 고리로 하여 두 가족의 사연은 서로 한 대목씩 교차 등장하고 있다. 결국 하나의 현실에서 끌어낸 두 가지 사례일 따름인 것이다.
같은 문제를 다루는 두 작품이지만, 앞서 간략하게 소개했듯 접근법은 사뭇 다르다. 『사람 냄새』는 보다 직접적으로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딸의 죽음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일인데, 무서운 것은 산업재해임을 처음부터 부정하고 나서며 적당히 무마하려는 삼성 측의 방식이다. 병에 걸린 후 자신들이 내친 직원에 대해 관계를 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죽은 후에도 더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고 좀더 많은 돈으로 회유하려 할 뿐이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딸이 그렇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삼성 다니는 딸이 대견했던 택시기사였다. 병이 걸리자 집에 찾아온 삼성 측 담당자에게, 피해자 아버지는 회사가 “인간적”으로 해결에 나서겠거니 생각하며 초면의 손님들에게 뒷산에서 따온 송이버섯도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나한테 닥치니까 자꾸 생각하고 따져보고 캐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라는 그의 말처럼, 싸움의 과정에서 한국사회 최고 강자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 되어있는지를 매순간 새로 배운다. 작가의 정돈된 이야기를 통해, 삼성의 사회 영향력이 정치, 언론, 일상 의식 속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를 그가 배우는 만큼씩 독자들도 함께 접하게 된다.
『먼지 없는 방』은 전체 작품 분량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서 하이테크 반도체 제작 공정에 대해서 거의 직업교육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먼지 하나 없도록 관리되는 철저한 환경이 매우 자세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100여 페이지가 지난 후 갑자기 반전을 맞이한다. 바로 그 첨단공정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유해한 것들이 넘치기에 황민웅 씨는 병에 걸렸던 것이다. 공정의 청결함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정애정 씨가 싸움 과정에서 알아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왜 일개 조립노동자가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위험요인을 파악해야만 하는가. 제품의 품질관리를 위한 모든 정보는 숙지하게 하면서,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위험은 어째서 대충(특히 생산량을 올리기 위해서 더욱) 넘어가는가. 제품이 우선이고 인간이 뒷전인 현실을, 싸우는 그들이 깨달은 흐름 그대로 독자들에게 느끼게 해준다.
이렇듯 두 작품 모두 각 사례의 일면을 취재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내용 구성을 통해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람 냄새』는 삼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같은 건조한 대목과 딸이 자기 택시에서 죽어가는 순간을 묘사하는 상황의 애절함이 수시로 교차하며, 사람 냄새의 필요성을 그 자체로 강조한다. 『먼지 없는 방』은 공장 노동의 치밀한 짜임새와, 남편 간병 과정에서 부딪히는 엉망이 된 생활의 양상들이 자연스럽게 대비되며 ‘먼지 많은’ 실제 세계와 그 안에서 발견하는 어떤 인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은 싸우는 과정의 험난함을 말한다. 『사람 냄새』의 피해자 아버지는 임의적 합의서에 그대로 서명을 해버릴 뻔할 정도로 그런 부분에서는 어리숙했으나, 함께 싸우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힘을 얻는다. 정애정 씨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조차 싸움을 외면받고(“자기들이 다 이건희인 줄 안다고”) 지역 의원 정당 사무실을 찾아가보는 가장 직관적(!) 대처가 수포로 돌아가며 갈수록 힘들어지는 와중에, 결국 함께 싸우는 이들에게 합류한다.
법정 투쟁은 지난하고, 사회적 연대를 얻어내는 것조차 험난하지만,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또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누군가가 당할 것이다.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리는 것은 일부 경우지만, 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모두의 이야기임을 탁월하게 알리는 만화책이다.
<기획회의> 320호 201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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