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람에 대한 예의
김낙호 만화연구가 capcold@capcold.net
『사람 냄새』 (김수박 지음, 보리출판사, 2012)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출판사, 2012)
발전의 성숙도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사회도 완벽하게 약자들에게 공정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한 쪽으로는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잘 해낼 수 있는 합리적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약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감내할 것을 강요받지 않도록 여러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 그 중 후자인,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밟히지 않을 힘이란 노조 같은 조직화를 통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보상 권리를 통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강요된 피해를 언론 등을 통해 담론화하여 대중의 연대를 얻어내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물론 험난하다. 강자들의 방해에 의해서든 사회적 편견에 의해서든, 조직화는 늘 쉽지 않다. 보상 권리를 행사해줘야 할 공공기관들은 종종 공공성보다 관료성이나 정치적 이해를 우선순위에 둔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담론화인데,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폭넓은 연대를 얻어낼 수 있을 만큼 주목받는 화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삼성 공장에서 작업환경 문제가 원인이 되어 큰 병을 얻었는데 정당한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해 싸우는 노동자들과 가족이라면, 이 구도는 더욱 절망스러워진다. 상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 강자인 대기업이며, 자사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막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여러 언론사들이 광고수익으로 삼성과 연결되어 있어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 또는 숫제 광고에도 과도하게 신중하다. 게다가 온갖 “나만이라도 성공하자”며 무한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개인들은 굳이 몇몇 노동자들의 억울함 따위에 관심을 할애할 겨를도 없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사람 냄새』『먼지 없는 방』 이 두 권의 책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뜬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사람 냄새』는 피해자 황유미 씨의 아버지의 시선으로 고인의 투병 및 사망 후 과정에서 삼성 측과 맞선 내역을 묘사한다. 지명도 있는 직장에서 일하던 딸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현실에서의 힘겨운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먼지 없는 방』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직장 동료였던 황민웅 씨와 결혼한 부인 정애정 씨가, 백혈병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가족을 꾸리며 싸움을 이어가는 내용이다. 반도체 공장의 첨단관리가 결국 제품을 위한 것일 뿐이고, 사람을 위한 안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발을 빼는 어설프고 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 다른 피해자들을 다룬 작품이지만, 삼성 피해노동자들이 모여 싸우고 있는 모임인 ‘반올림’을 고리로 하여 두 가족의 사연은 서로 한 대목씩 교차 등장하고 있다. 결국 하나의 현실에서 끌어낸 두 가지 사례일 따름인 것이다.
같은 문제를 다루는 두 작품이지만, 앞서 간략하게 소개했듯 접근법은 사뭇 다르다. 『사람 냄새』는 보다 직접적으로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 언급한다. 딸의 죽음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일인데, 무서운 것은 산업재해임을 처음부터 부정하고 나서며 적당히 무마하려는 삼성 측의 방식이다. 병에 걸린 후 자신들이 내친 직원에 대해 관계를 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죽은 후에도 더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고 좀더 많은 돈으로 회유하려 할 뿐이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딸이 그렇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삼성 다니는 딸이 대견했던 택시기사였다. 병이 걸리자 집에 찾아온 삼성 측 담당자에게, 피해자 아버지는 회사가 “인간적”으로 해결에 나서겠거니 생각하며 초면의 손님들에게 뒷산에서 따온 송이버섯도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나한테 닥치니까 자꾸 생각하고 따져보고 캐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라는 그의 말처럼, 싸움의 과정에서 한국사회 최고 강자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렵게 되어있는지를 매순간 새로 배운다. 작가의 정돈된 이야기를 통해, 삼성의 사회 영향력이 정치, 언론, 일상 의식 속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를 그가 배우는 만큼씩 독자들도 함께 접하게 된다.
『먼지 없는 방』은 전체 작품 분량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서 하이테크 반도체 제작 공정에 대해서 거의 직업교육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먼지 하나 없도록 관리되는 철저한 환경이 매우 자세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100여 페이지가 지난 후 갑자기 반전을 맞이한다. 바로 그 첨단공정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유해한 것들이 넘치기에 황민웅 씨는 병에 걸렸던 것이다. 공정의 청결함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정애정 씨가 싸움 과정에서 알아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왜 일개 조립노동자가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위험요인을 파악해야만 하는가. 제품의 품질관리를 위한 모든 정보는 숙지하게 하면서,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위험은 어째서 대충(특히 생산량을 올리기 위해서 더욱) 넘어가는가. 제품이 우선이고 인간이 뒷전인 현실을, 싸우는 그들이 깨달은 흐름 그대로 독자들에게 느끼게 해준다.
이렇듯 두 작품 모두 각 사례의 일면을 취재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내용 구성을 통해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사람 냄새』는 삼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같은 건조한 대목과 딸이 자기 택시에서 죽어가는 순간을 묘사하는 상황의 애절함이 수시로 교차하며, 사람 냄새의 필요성을 그 자체로 강조한다. 『먼지 없는 방』은 공장 노동의 치밀한 짜임새와, 남편 간병 과정에서 부딪히는 엉망이 된 생활의 양상들이 자연스럽게 대비되며 ‘먼지 많은’ 실제 세계와 그 안에서 발견하는 어떤 인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은 싸우는 과정의 험난함을 말한다. 『사람 냄새』의 피해자 아버지는 임의적 합의서에 그대로 서명을 해버릴 뻔할 정도로 그런 부분에서는 어리숙했으나, 함께 싸우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힘을 얻는다. 정애정 씨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조차 싸움을 외면받고(“자기들이 다 이건희인 줄 안다고”) 지역 의원 정당 사무실을 찾아가보는 가장 직관적(!) 대처가 수포로 돌아가며 갈수록 힘들어지는 와중에, 결국 함께 싸우는 이들에게 합류한다.
법정 투쟁은 지난하고, 사회적 연대를 얻어내는 것조차 험난하지만,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또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누군가가 당할 것이다.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리는 것은 일부 경우지만, 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는 것이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모두의 이야기임을 탁월하게 알리는 만화책이다.
<기획회의> 320호 201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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