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다이어리를 사고 2012년 다이어리를 정리하며

1. 인간의 내면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인간의 외면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 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듯 평생을 사는 걸까?

 

2. 이제부터라도 부디 좀 이기적으로 살아. 산다는 게 어차피 이기적인 거잖아. 이렇게 생선을 잡아먹거나 또 어쨌거나 누군가로부터 다른 뭔가를 빼앗아서 말이야.

 

4. 이것은 너무 불공평한 시합이다. 첫눈에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첫인상으로 대부분의 시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외모에 관한 한,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지킬 수 없다. 선빵을 날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인간에겐 기회가 없다. 어떤 비겁한 싸움보다도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5. 좋은게 좋은 거니까. 좋은 건..좋은 걸까?..왜 좋은 걸까?

그건 이유가 없어. 그냥 좋잖아.

돌이켜보면 세상의 시소도 이미 기울어진 지 오래였다.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였고, 좋은 것이어야만 옳은 것이 되는 시절이었다.

 

6. 어쩜 우린 가장 좋을 때를 감정이란 이유로 망치지 밝은 날을 방구석에 쓸어 담으며 좋은 음식 앞에서도 소화 안돼 그래 그건 거짓말인 거야 그럴듯한 영원의 약속들 시간가면 뜸해지는 뜨거운 표현 신제품도 히트치면 맛 떨어지듯이 모두 변하지

 사랑은 한 잔의 소주 끝을 알면서 또 한 잔 들이키는 유혹 꺠어나면 어딜지 몰라 인생은 답 없는 문제 서둘러 봐도 어차피 모두 같은 점수, 오늘 하루 행복이 숙제

어쩜 우린 가장 좋은 기회를 실패라는 이유로 겁내지 한 순간 틀어지면 손 놓아버리고 상관없는 핑계들로 도망쳐대

 

7. 그 한 달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던 시기였다. 그리고 나는 늘 혼자였다. 그 좁고, 외롭고, 정숙하고, 정숙해야만 하는 방 안에서-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했고,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 동시에, 뻐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8.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란다.

 

9. 사는 게 별건가 하는 순간 삶은 사라지는 것이고, 다들 이렇게 살잖아 하는 순간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세상이 펼쳐진다. 노예란 누구인가? 무언가에 붙들려 평생을 일하고 일해야 하는 인간이다.

 

10. 미녀가 싫다기보다는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11. 결국 아무리 서로를 비교한다 해도, 다들 이렇게 살잖아..그리고 이 삶을 <다수결>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 삶은 뭐하는 것일까? 말하자면 늘 그런 기분이었다. 따라 뛰는 느낌, 끝없이 따라, 뛰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12. 삶은 허무하지 않다. 생활이 허무한 것이다.

 

숨을 쉬고, 일을 하고,,귀찮아도 밥을 먹고, 견디고,,잠을 잔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삶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다. 무료,해도..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인간들은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고 나는 믿었다. 무료하므로 돈을 모으는 것이다. 무료해서 쇼핑을 하고, 하고, 또 하는 것이다. 아무 일 없고, 아무 문제도 없는 생활이지만...이것이 <삶>은 아니라고...

 

13. 감춰진 스스로의 뒷면에 어떤 교양이나 노력을 쌓아둔다 해도..눈에 보이지 않는 달인 것입니다. 우주의 어둠에 묻힌 채 누구도 와주거나 발견하지 못할..붙잡아주는 인력이 없는데도 그저 갈 곳이 없어 궤도를 돌고 있던 달이었습니다. 그것은 춥고, 어두웠습니다.

 

14. 바라는 모든 걸 얻는 것이 인생의 가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겨우, 가까스로 얻은 것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인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15. 아무래도 자본주의는 <59800원>이 아닐까 싶어. 나는 요새 왜 자본주의는 <40200원>이 될 수 없을까, 에 대해 골몰히 생각중이야.

 

16. 저렇게 단단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용기..사람 마음 어디쯤에 그런게 있는 걸까요?

 

17. 문득 이 세계가 외계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서로에게, 누구나 외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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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생각들과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수많은 느낌들, 감정들..을 느끼게 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

어머니, 일부일처제, 낭만. 분수는 높이 솟구친다. 힘차게 흩어지는 물은 거품까지 일으킨다. 충동의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나의 사랑, 나의 아기뿐이다. 이 전근대적인 인간들이 미치고 사악하고 비참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의 세계는 유유자적한 태도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건전하고 덕망이 있고 행복해지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어머니라든가 연인으로 인해서, 조건반사적으로 따를 줄 모르는 여러 가지 금기로 인해서, 유혹이라든가 고독한 회한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과 끝없이 고립화되는 고통에다 불확실성과 빈곤으로 인해서-그들은 모진 감정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강한 무엇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이 더구나 고독 속에서, 희망도 없는 개인적인 고립 속에서 모진 감정을 반추하면서 어떻게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차바퀴는 꾸준히 돌아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회전에는 감시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회전을 감시할 인간들이 있어야 한다. 축이 있는 바퀴처럼 견실한 인간, 건전한 인간, 순종하고 꾸준히 만족하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울부짓는 소리-우리 아기, 우리 엄마, 나의 유일하고 유일한 사랑 따위. 신음하는 소리-내 죄, 나의 하나님, 고통의 비명, 열병에 걸려 내뱉는 중얼거림, 노령과 빈곤에 대한 한탄-그런 와중에서 어떻게 그들이 차바퀴를 회전시킬 수 있는가?

 

 

억제된 충동은 넘쳐흐른다. 범람하는 것은 감정이며 격정이다. 심지어 그것은 광증이다. 그 물살의 힘과 제방의 높이와 견고성에 좌우된다. 가로막지 않은 강물은 지정된 수로를 평온하게 흘러가서 평욘한 행복에 당도한다.

"제군들은 행복한 거야." 총통이 말했다. "제군들의 생활을 감정적으로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 여하한 수고도 아낀 적이 없었다-될 수 있는 한 어떤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군들 자신의 생활을 생각해봐. 제군은 여태까지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쳐본 적이 있나?"

그 질문은 부정적 침묵으로 응답되었다.

"욕망의 자각과 욕망의 충족 사이에 긴 시간적 간격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

"제가 원했던 소녀가 제 것이 되기까지 거의 사 주일을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강한 감정을 느꼈겠지?"

"끔찍했었습니다!"

 

- A.L. Huxley, 1894~1963, 멋진 신세계

 

충동을 억제할 필요도 없고, 욕망의 자각과 욕망의 충족 사이에 긴시간적 간격을 체험할 필요도 없고, 간혹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외롭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더라도 몇 알의 소마로 그 모든게 해결되는 곳, 생활을 감정적으로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될 수 있는 한 어떤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하한 수고도 아끼지 않는 곳 ,바로 '멋진 신세계'

 

 

사람은 누구나 아프기 싫어하고, 상처받기 싫어한다. 아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큰 고통, 슬픔, 분노 등의 강한 감정을 느낀다. 이 역시 아프고 힘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누구도 이 같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같은 경험을 겪을 때 흔히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듣거나 하게 되는데 당장 겪는 '내 일'일 때는 성숙이고 뭐고 당장은 아프지 않고 싶고, 슬프고 싶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현실로 실현되는 곳,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이다.

 

그러나 아플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으며, '만인은 만인의 공유물'이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를 사랑해주는 이 세계는 과연 '멋진' 곳일까?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감정-아픔, 고독, 슬픔, 불행-들은 다 배제되는 것이 최선일까? 그런 감정들을 못 느끼게 하는게 행복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아프기 싫어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면 대신 아파하고 싶어하는 등 아픔을 감수하고자 하기도 하며(이것에서 행복이나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상처받는 것이 아픔임을 알면서도 그것보단 행복이 더 크기에 상처받는 것을 택하기도 하며, 어리석은 짝사랑을 슬퍼하는 한편 행복함도 느끼기에 멈추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비록 고통과 함께 하는 행복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명백히 행복임을 증명한다.

또한 우리는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행복이 절대 가져다 줄 수 없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프지 않음에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을 겪어봐야만 그 감정을 긍적적인 감정이나 방향으로 승화시켜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고통이나 불확실성, 빈곤으로 인해, 모진 감정들로 인해, 더 이를 악물고 나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으며, 발전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감정을 버리지 않았기에 결국 사회적, 경제적으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사회를 이루는 힘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인위적인 행복이기에, 거짓되고 기만적인 행복함만을 느끼며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멋진 신세계를 거부한다.

인간의 감정은 희노애락애오욕이 함께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느껴지는 것들을 가감없이 온전히 느껴야하고 힘들면 힘들어하고 슬프면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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