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여름 탓일까요. 나는 풍만함 그리고 포만함을 참을 수 없습니다. 자연은 정지해 있으며 동경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그래서 공허하며 피곤을 느낍니다. 스스로가 가치 없어 보입니다. 나는 자주 이른 새벽에 깨어납니다. 모든 것이 아직 빈 상태이고 회색으로 싸여 있을 때 말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공포,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듯한 공포를 느낍니다. 삶에 대한 공포, 살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이때는 어떤 위대한 생각도 나를 도울 수 없습니다. 신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공포에 단독으로 내맡겨져 있죠. 최악의 경우가 지나가면 나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살지 않았다는 불안감, 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영원히 내 인생은 작은 궤적 속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불안감들입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한테서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이 무슨 오만인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무언가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합니다. 그 무언가를 영원히 상실할까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생기에 차 있을 때야. 그리고 마치 미친 자가 자기의 고정관념에 몰두하듯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야. 의욕이 없어지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인간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야. 그 당시 나는 어렸고 매우 혼란한 상태에 있었어. 언니도 알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과 아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거야. 갑자기 다르게 걷고, 다른 글을 쓰고, 다르게 말을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지. 우리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혹은 전혀 다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기 자신과 게임을 할 수 있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이런저런 인물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끝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렇지만 가끔 우리는 선택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지. 혼자 있을 때, 아주 고독할 때,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야. 우리는 그것을 보지. 자기 자신을 말이야. 그리고 슬픔에 가득 찬 모습으로 말을 거는 거야. 너무 늦었어, 하고 말이야.
- 루이제 린저 (Luise Rinser) <삶의 한 가운데>
의욕적, 모험적, 충동적인 니나는
나에게 많은 것을 던져주었다
깊이 공감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