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후 어느 날 -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고가는 것이 직선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맞닥뜨리는 것 같은 속에서
나의 설움은 유유히 자기의 시간을 찾아갔다
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
우둔한 일인 줄 알면서
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
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느냐
흐르는 시간 속에 이를테면 푸른 옷이 걸리고 그 위에
반짝이는 별같이 흰 단추가 달려있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꾸 뻐근하여만 가는 목을 돌려
시간과 함께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것
그것은 혹시 한자루의 부채
- 그러나 그것은 보일락 말락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것 -
하나의 가냘픈 물체에 도저히 고정될 수 없는
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이며
이 밤이 기다리는 고요한 사상마저
나는 초연히 이것을 시간 위에 얹고
어려운 몇고비를 넘어가는 기술을 알고 있나니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
빈 방안에 나는 홀로이 머물러 앉아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
- 김수영, 『방안에 익어가는 설움』, 1954.
설움이 가득한 생활이어도 이건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설움이 방 안에 충만할 때도, 우둔한 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설움을 역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맬 때도, 고요한 사상을 시간 위에 얹고 어려운 몇고비를 넘어가는 것
그렇고 설움을 보낸 뒤 빈 방에 홀로이 머물러앉아 책을 열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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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2016.01.28
- 달나라의 장난 2016.01.27
- 다들 듣지 않고 말만해 2015.12.26
-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12.26
- 임솔아, 최선의 삶 2015.12.24
- 심보선 청춘 2015.12.03
- 황인찬 종로사가 2015.12.02
- 복효근 순간의 꽃 2015.12.02
- 사랑이었을까 2015.12.01
- 사인 2015.12.01
방 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달나라의 장난
막내 동생의 결혼식(앞줄은 어머니, 뒷줄은 김수영, 김현경 부부)
1968년 '시여 침을 뱉어라' 부산에서의 문학세미나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3>
1950년 8월 의용군으로 끌려간 지 2년 만에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김수영 시인은 얼마 되지 않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런 그에게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씨는 어느날 편지를 쓰면서 한 장의 만화를 그려넣었다. 그 그림은 접시 위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앙꼬빵 세 개였다. 포로수용소에서 갓 나오자마자 부산에서 직장을 얻기 위해 거리에서 거리로 굶주리며 떨고 있을 수영에게 따스한 유머로 위로하기 위해서 그려넣은 것이었는데 수영은 그림을 보고 웃다가 울었다는 글과 함께 이 시 <달나라의 장난>을 보내왔다고 한다.
산다는 것이 새삼스레 위대하고 신기로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라는 구절처럼 우리는 무엇을 위해 멈추지 않고 돌고 또 도는걸까?하는 의문이 든다.
생존을 위한 모든 행위의 귀찮음, 고통과 번뇌를 참아내면서까지 왜 우린 매일 살아가고 있는걸까? 밥을 먹고 싶지 않아도 죽으면 안되니까 먹어줘야 하고, 잠만 자고 싶어도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잠을 참아가며 일을 해야 하고, 즐겁기 위해 즐겁지 않은 일을 배로 참아내야 하는 고통 넘어 고통인 삶을 대체 왜..? 죽음이 평화 속에 영원히 잠드는 거라면 우리는 왜 평화 대신 전쟁같은 삶을 택하는걸까? 죽으면 귀찮은 밥먹기도 안해도 되고 실컷 잠만 잘 수 있을텐데.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게 두려워 내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걸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지 않으려고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내며 꿋꿋이 살아가는걸까?
달나라의 장난도, 달도 없는 그 세계가 무서워서? 사는 동안은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나가야하며 끊임없이 돌아야만 하는 팽이같은 삶이 너무나 무겁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날 보면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계속 살아가도록 애초부터 설계되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듣지 않고 말만해
바닷마을 다이어리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32610&mid=28882
서로가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 골몰하지 않고,
서로의 상처에 골몰했고, 서로를 위했기에 가능해진 이야기.
작은 바닷마을 카마쿠라(이 영화의 배경이자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곳으로 도쿄에서 50km거리)에는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가 살고 있다. 서로가 부모이자 자매인 이들 세 자매에게 15년 전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가 들리면서 이복 여동생 스즈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간 그 곳에서 만난 스즈는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혼자서 돌봤던 아이. 사치는 자신들의 몫까지 다 해준 스즈에게, 이제 가족이라곤 의붓어머니밖에 없는 스즈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제안이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스즈를 얼마나 봤다고...) 같이 살면서 많은 갈등을 겪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가 섞였다고 해도 남이나 다름없이 지내왔으니까. 그래서 이들이 서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나가는 한편,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어쩔수없는 정이 조금씩 들어가고, 마음이 열리게 되고, 결국 서로 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갈등도, 벽도 처음부터 없이 시작한다.
그렇기에 갈등이나 서로에게 세워진 벽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한 상에 둘러 앉아 먹는 집밥, 서로 나누는 대화, 마당에 심어진 매실나무에서 스즈가 딴 매실로 담구는 매실주 등을 통해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가고, 추억을 만들어나가면서 어느새 가족이 되어버린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은 이 영화로 처음 접하는 거지만 이 점에서 연출력이 정말 뛰어나다고 느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점이 바로 그 점이었다. 그래서 어떤게 진짜 가족인지, 어떤게 진짜 집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서로가 자신의 아픔보다 언니 혹은 동생의 아픔을 생각하는 모습도 정말 좋았다. 다들 짐을 안고 살아간다지만 자신의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다들 아픔이 있다지만 자신의 아픔을 더 아파하기 마련인데 이 네 자매는 그렇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아파했다. 자신을 연민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미안해했다. 현대사회에서 보기 힘든 모습인만큼 너무 보기 좋았다.
우리, 함께 산다는 것
우리, 가족이 된다는 것
우리, 사랑한다는 것
우리, 영원하다는 것
영화 팜플렛에 적혀있던 문구다. 이 네 자매가 영원히 한 집에 살진 않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집'임은 영원할 것 같다.
이 영화의 원작만화가 일본에서 2013년 만화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사실 원작소설이나 만화가 있으면 다 읽어보는 편이다. (영화보다 원작이 더 낫다고 느낄 때도 많고) 하지만 이 영화만은 보고 싶지가 않다. 머릿속에 담아둔 영상도, 배우들의 연기도, 집에서의 일상적인 풍경도, 혹시라도 변하게 될까봐 겁이 날 정도로 좋았으므로ㅎㅎ
보물은 결국 사람이고, 진짜 집은 사람에게 있는 거라는 걸 깨닫게 해준 이 영화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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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최선의 삶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책을 읽을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책이 그 첫번째 기록이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트위터 때문. 인터넷보단 트위터리안들의 입소문을 더 믿는지라 트위터에서 떠들썩하게 추천을 받고 있는 이 책을 선뜻 골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혹은 다 읽고 나서 제목에 맞춰 책의 주제를 생각해보는건 대중들이 읽기 바라는 의도를 따라가는것 같아서 일부러 하지 않는 방법이긴 하지만 '최선의 삶'으로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각기 다른 최선의 삶이 가져오는 그들의 비극적인 일에 대해서도.
이 책의 주인공은 여중생인 나(강이), 아람, 소영. 셋은 주민들 간의 격차가 큰 새롭게 만들어진 읍내 전민동에서 같이 중학교를 다닌다. 이 셋도 그 격차로부터 예외일 수 없어서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성장하지만 아이들의 우정답게 서로를 구분지으려 하지 않는다. '서로를 구분할 줄은 알았지만 구분짓지는 않았'던 아이들은 오히려 기성세대의 그러한 구분, 자신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씌워진 학교라는 제도적 구속 등에 반발하여 함께 가출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의 심사평을 맡은 소설가 정한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그와 같은 구분에 반발하며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무인 모텔에 몰려가 알몸으로 포르노를 보고, 모두 같이 소주를 마시고 뒹굴거리며 하나의 몸, 하나의 냄새가 된다. 이들은 '다행히'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고, 무성적 존재로서의 희락을 함께 나눈다.'
하지만 애초에 집이 싫어서, 집이 '병신'이라 길을 선택한 강이와 아람과 달리 소영은 유복한 아이라 집을 나가면 '병신'같이 살아야 하는 아이. 가출의 원인과 목적이 달랐으니, 각자가 좇는 최선의 삶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설은 아래에서 정한아가 말하는 대로 흘러간다.
'강이와 아람에게 그 기행이 자신을 잊어버리기 위한 것이라면, 소영에게는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 격차는 생활의 격차보다 더 크게 그들의 사이를 벌려놓기 시작한다. (...)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서로를 맹렬하게 증오한다. 알몸으로 하나되어 낄낄대던 아이들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하고, 옷을 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면은 마침내 세계의 본모습을 보고 몸을 가린 태초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불합리와 모순, 그리고 분노를 느끼며 경험하는 잔인한 성장의 일면이다. 강이는 소영과의 사건을 겪으며 아이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벗어난다'
뭐 이런 얘기쯤 된다. 한몸처럼 지냈던 소영과 내가 병신 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비극적인 이야기.
임솔아 씨의 문장도 좋았다. 소설가 박성원 씨는 심사평에서 응모작 중에 기발한 소재에 기대는 소설이 많았는데 그 기발함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유는, 아무리 기발한 이야기라고 해도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문장 뿐이기 때문에 기발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이 소설은 소재의 기발함은 없다. 하지만 문장이 좋은 소설이다.
읽으며 좋았던 문장들을 소개하고 포스팅을 마치겠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
아무나 쓸 수 있는 샴푸 냄새와 로션 냄새를 똑같이 풍기며 같은 냄새가 되었다. 나는 친구들이었다. 전날에 묵었던 손님이었다. 옆방, 윗방, 아랫방 손님이었다. 내일 묵을 손님이었다. 아무나였다. 그날은 세상 누구나의 생일이었다.
검은 줄무늬가 있는 아기 고양이
이제는 자기가 죽을 것 같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되었다. 죽음에 내몰린 약자가 된 채로 엄마는 나를 엄마의 액자 속으로 밀어넣고 싶어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약자였다. 샤프심보다 더 강한 약자였다. 엄마의 액자는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흉기였다. 주먹보다 더 무자비한 흉기였다.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어야만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고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세 아이
아람은 보조치아를 혀끝으로 쓸어내리며, 언젠가 보조아빠를 만들 거라고 했다.
GPS
우리는 저마다의 불행을 한자리에 모아놓고서는 어이없는 교집합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다시 무인 모텔에 온 것처럼 행복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해질수록 서로에게 진절머리를 쳤다. 소영의 연기는 점점 더해갔지만,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좆밥
무릎은 꿇지 말았어야 했다. 무릎을 꿇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태도,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였다.
'아람아, 너는 더러운 함정이야'
여전한 모든 것을 함정이라고 불렀다. 더럽고 교활한 함정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소영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날보다 더 굴욕적인 함정들이 일상처럼 되어갔다. 익숙해지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나를 내버려두기로 작정했다면, 내가 내버려둘 수 없게 해야겠다고 작정하기 시작했다.
병신이 된 후에도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진짜 병신이었다.
칼을 꺼낼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다시 집을 나갈 용기도 사라졌다. 학교를 박차고 떠날 용기도, 먼 밖까지 가보고 싶다는 꿈도 사라졌다. 나에게조차 나는 투명해져갔다. 그런 나를 편안해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
투어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다른 물고기와 함께 있게 된다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온전치 못할 것이다. 상대방이 사라지거나, 자신이 사라지거나, 그것이 투어의 운명이었다. 살기 위해서 강이는 혼자서 살았다.
어항 속에서 혼자 살도록, 평생 거울과 함께 살도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투어로 태어난 강이는 원래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스노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더는 세상은 아름답고 즐겁지만은 않고,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흉기를 휘두르는 존재였으며, 한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철저히 타인임을 깨달아 갈 때, 애정이 증오로 바뀌는 마음을 처음으로 겪을 때, 우리는 강이처럼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 강이만큼 저항할 수 있을까?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최선을 위해 나를 조금씩 포기하고 투명해져버린 과거의 내가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이 되어있었다.
한 방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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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청춘
황인찬 종로사가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겠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 그것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놀라워서, 위대하고 장엄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이걸 정말 원했다고 믿겠지 그리고는 신적인 예감과 황홀함을 느끼며 그것을 견디며 끝없이 끝도 없이 이 거리를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그러다 우리가 잠시 지쳐 주저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거기에 담긴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 버리겠지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황인찬 , 종로사가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라는 이 말이 어찌나 좋던지 이 구절 하나에 폭 빠져버린 시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종로라는 오래된, 소설같고, 영화같은, 그런 오래된 거리를 걷는 모습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지쳐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
서로의 눈을 '아 이정도면 되었다.'하는 마음이 될때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지길래 그 그림을 재빨리 마음에 그려 넣었더니 어서 너를 만나 "우리 자주 걸을까요"라고 말하고 싶어 입과 마음이 근질근질
복효근 순간의 꽃
그저 무심히
내가 너를 스쳐갔을 뿐인데
너도 나를 무심히
스쳐갔을텐데
그 순간 이후는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스쳐가기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간밤의 불면과
가을 들어서의 치통이
누군가가 스쳐간
상처 혹은 흔적이라면
무심하지 않았던게 아니라
너와 나와는
그 무심한 스침이 빚어놓은
순간의 꽃이기 때문인 것이다
복효근 , 순간의 꽃
무심하여 꽃 한 번 피워본 적이 없는 내가
너를 만나 꽃이라는 것도 되어 본다. 고맙다.
사랑이었을까
이게 다일까
그렇게 컸던 마음이 벌써 다했을까
이 정도의 마음이었으면서 왜 그렇게
유난이었을까
왜 그리도 특별하다고 느끼고
왜 그리도 마음아파 했을까
이제는 별 거 아닌 마음인데
그 땐 왜 그리 별 거였을까
그 땐 나도 어쩌지 못했던
벅참이었고 설렘이었고
마음의 진실한 울림이었다
하루종일 웃게 했던 행복이었고
내내 두근거리게 했던 기쁨이었다
하루종일 그 사람이었다
내 시간 내 생각 내 마음은
온전히 그 사람 것이었다
모든 의미는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일상에서
나는 사소함에 가까웠지만
나의 일상에서
그 사람은 사소함과 멀었다
그 사람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나에겐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라서였다
그러니
사랑이었을까
짧았지만 이것 역시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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